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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대 비극 - 햄릿 -보고 듣고 읽은 것 리뷰/책 2020. 2. 3. 09:14
친한 친구가 빌려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읽기 시작했다.
아름다운날에서 출판한 책으로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순서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들어있다.
📚 햄릿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유명한 구절이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영문으로 읽어야 셰익스피어 문체의 진정한 미를 알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영어실력이 없으니 내용만 본다.
유명한 만큼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어보기는 처음.
셰익스피어 유명하다 유명하다 했는데 사실 어느시대 사람인지 감이 안와서 마치 천오백년전 사람 같은 느낌이다.
워낙 고전명작의 대표인물이라 그런 것 같다.
책의 앞부분 들어가는 말에 셰익스피어의 생과 작품활동을 연도까지 잘 정리하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드디어 틀린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알아보기
셰익스피어는 1564년 생으로 2020년인 지금으로부터 대략 460년 정도 전 르네상스 시대의 영국 사람이다.
생각보다...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1차 충격. 💦
4대비극은 1600년대에 막 진입했을 때 쓰여졌는데 그 중 햄릿이 가장 먼저 1600년에 쓰여졌다.
작가가 몇살에 어떤 작품을 썼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는 편이라 계산해보면 37살.
생각보다 젊어서 2차 충격. 💦 (당시엔 그렇게 젊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1580년대 말에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 했고 29살 쯤인 1592년엔 인정받는 신예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p.12)
배우였던 그가 극작 활동을 시작한 것은 1590년 무렵이고 그의 처녀작은 1590년에 쓰여진 3부작 역사극 '헨리 6세'이다.
27살에 극작을 시작해 1610년대까지 쭈욱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러다 그가 생을 마감한 때는 1616년. 그의 나이 53세였다. 약 20여년을 쭉 글을 썼던 것이다.
460년 전에도 역시 사람이 잘 되려면 정말 부던히도 부지런해야하나보다. 게으른 나는 반성한다...
이쯤되면 후대에도 이렇게까지 영향력을 가지는 이 위인의 얼굴이 궁금하다.
짜잔. 나름 뽀송뽀송하게 잘 나온 사진을 골라왔다.
굉장히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다른 초상화를 보면... 또 좀 느낌이 다른데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의 인상이겠거니 한다
이런 느낌. 계란에 좀 더 가까워졌다.
두 그림 다 누가 그린 건지, 어디서 전시되는 건지 좀 알면 출처 표시도 하고 좋을텐데..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합니다.
사진을 찾다보니 헝가리에서 1964년에 발행한 셰익스피어 그림 우표가 있었다.
셋 다 계란형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생각했을 땐 세번째 요 그림이 가장 실물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안 봐서 모를 일이지만.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정말 대단하고 세계가 존경하는 위인임을 증명하듯
이탈리아에도 셰익스피어 동상이 있다.
영국에도 되게 많을 것 같은데 찾았을 때 먼저 나온 동상이 어째 이탈리아 동상인 것은
그만큼 셰익스피어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위인이기 때문이겠지.
이 정도 찾아보고 나니... 셰익스피어가 되게 친근해진 느낌이다.
유럽 어딘가를 걷다가 갑자기 마주친 동상이라도 셰익스피어라면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듯.
다시 햄릿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당시에 이 작품이 실제 연극으로 올려졌을텐데 얼만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지 궁금했다.
무려 2천년대를 사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는 이미 익숙한 작품 중 하나로 접하게 되어설까..
큰 감흥은 없고 오히려 군데군데에서 작은 분노를 느끼며 읽었다.
이 시대의 여자로 사는 것은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인공인 햄릿이나 그의 대적자인 숙부이자 현왕 클로디어스 보다는
오히려 오필리아와 햄릿의 어머니이자 왕비로 나오는 거투루드에게 더 이입하고 집중하며 읽었다.
1600년에 쓰여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420년 전의 여성에게 무엇이 요구되었는지
그들이 얼만큼 작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크게 2군데에서 실망과 절망을 느꼈는데
먼저 오필리아의 오빠인 레어티스가 프랑스로 돌아가며 여동생에게 정숙한 처녀됨을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p.41) "그분의 구애에 솔깃해 넋을 잃고 소중한 정조를 바치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정욕의 위험한 화살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정숙한 처녀는 달빛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하지 않더냐."
"아무리 정숙한 여인도 비껴 가기 어려운 것이 이 세상의 험담이란다."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그저 조심하는 게 상책이야."
레어티스가 떠나고 옆에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p.43) "왕자님이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고 진정으로 여겼다니, 어리석구나. 좀 더 조신하게 처신하도록 하여라.
안 그러면 속된 말로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게 될 거다."
"앞으로는 순결한 처녀답게 그분과 쓸데없이 만나는 일은 삼가는 게 좋겠구나.
여기서 가족 내에서 딸이라는 여성의 위치가 어떨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미혼의 딸은 하나의 소유물로 여겨지며 가장 최상급의 상태인 처녀성을 유지하여야 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정숙치 못할 경우 여성의 보호자(이자 사실상 소유주)인 아버지가 욕을 면치 못한다.
여기서 '정숙함'이라는 기준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율이라기 보다는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남성이 휘두르는 권력에서 나오는 힘인 것이다.
정숙하지 못한 여자는 소유주가 불분명한 여자로 아무나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이는 즉, 정숙함이라는 기준으로 여성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유주인 남성을 존경한다는 뜻인 것이다.
여성의 인격과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위에서 발췌한 몇 문장에 다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정조, 정욕을 멀리하라, 부끄러움, 정숙, 조심, 조신, 순결, 처녀"
반면에 미혼의 남성의 경우는 어떨까.
레어티스의 아버지이자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폴로니어스가 아들이 프랑스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하인 레이날도에게 뒷조사를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p.57)
폴로니어스 "약간의 험담은 늘어놔도 좋지만, 명예를 손상시키는 말은 하지 말게.
젊은이에게 으레 따라다니는 방탕이나 환락에 빠져 사는 행동 따위의 실수쯤이야 상관없겠지."
레이날도 "도박 같은 것도요?"
폴로니어스 "그렇지. 또한 음주, 결투, 욕설, 싸움질이나 오입질 정도는 괜찮아."
레이날도 "영감마님, 그런 것은 명예에 관한 일인뎁쇼"
폴로니어스 "상관없어. 자네가 말하기 나름이야. 적당히 얼버무리면 돼. .... 중략... 하여튼 내가 원하는 것은
험담을 하되 살짝 내비치는 것으로 해서 젊은 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탈선쯤으로 인식하게 하면 돼.
누구나 젊을 때에는 물불 안 가리니까 그 정도의 탈선쯤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이해시키란 말이야."
여동생인 오필리아는 달빛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부끄럽게 여기라면서
오빠인 레어티스는 저 멀리 프랑스에서 음주, 결투, 욕설은 물론이고 도박이나 오입질..까지
온갖 짓을 다 해도 적당히 얼버무리면 용인이 된다.
'누구나 젊을 때에는 물불 안 가린다'는 말은 분명히 여성을 제외한 말일 것이다.
'젊은 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탈선' 또한 여성은 해당될 수 없다.
같은 인간임에도 성별에 따라 이렇게까지 달라지는 차별적인 대우를 다시금 읽고 있자니 분노가 날 수 밖에.
이러한 실망과 절망 포인트는 주인공 햄릿이 자신의 어머니인 거투루드 왕비를 힐난하는 장면에서도 느껴진다.
(p.107) "어머니는 간악한 행동으로 여인의 정숙함을 짓밟았고, 정결한 부덕을 위선으로 불리게 했으며,
청순하고 아름다운 이마에서 장미꽃을 떼어버리는 대신 수치로 벌레먹게 했고, ... 후략"
"어머니 나이쯤 되면 정욕도 사그라져 분별심에 복종하게 마련이니까요. .... 중략 ...
아직도 욕정이 타는 걸 보니 감각은 있는 모양이십니다. ... 중략 ...
아, 수치심이여, 너의 부끄러운 마음은 어디로 갔느냐? 늙은 여체에도 욕정의 불씨를 당긴다면
피끓는 젊은이들에게 도덕 따위는 초처럼 누그러져 자기 열로 녹아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뿐만 아니라 더렵고 역겨운 땀내가 뒤범벅이 된 이불 속에 들어가 썩은 것이 들끓는 속에
더러운 돼지 같은 놈과 히히덕거리며 몸을 섞다니...."
(p.111) "돼지 같은 왕이 유혹하거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세요. 볼을 음탕하게 꼬집히며
귀여운 생쥐라고 부르게 하세요. 냄새 나는 입술을 갖다 대게 하든지 징그러운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애무 받으면서 이야기를 전부 고해 바치세요."
햄릿 이놈은 못하는 말이 없다.
여자가 존경 받기 위해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정숙함은 이렇듯 한순간에 칼날이 되어 여성의 모든 것을 난도질한다.
정숙함은 절대 여자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이며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던 권력의 힘이라는 것이 이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이자 심지어 왕자와 왕비의 관계인 햄릿과 거트루드 사이에서
햄릿은 어머니이자 왕비인 거트루드에게 정숙함을 내다버린 것을 이유로 온갖 희롱과 조롱을 서슴치 않고 뱉는다.
이런 상황에서 거트루드는 아무 방어도 하지 못하며 우스운 것은 이런 거트루드를 보호하는 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죽은 전남편의 유령이다. (햄릿의 친아버지이기도 한 이 유령은 흥분한 햄릿을 몇마디로 진정시킨다.)
당시의 여성이 갖는 영향력은 혼자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남성의 지배 하에서 보호를 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햄릿 내에서 여성 캐릭터는 오필리아와, 거트루드 두명 뿐인데 이 둘의 운명을 이야기 전개에 따라 살펴보면
거트루드는 전왕이 죽자 새 왕에게 넘어가며 햄릿의 어머니이자 새 왕의 부인으로써만 존재하다
정숙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힐난만 받다가 불운한 운명의 장난으로 죽을 뿐이다.
오필리아는 정숙함의 결정체이자 작은 꽃과 같은 존재로, 고결한 처녀성을 내세워 햄릿을 유혹하는 꽃으로
아버지와 왕에게 이용되다가, 아버지가 죽자 시들어버리듯이 미쳐버리고 끝내 비통하게 죽어버리고 만다.
둘 다 굉장히 무력하고 정숙함만이 전부인 단면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적인 결말을 강조하기 위해 오필리아를 오랑캐꽃과 엮어서 가련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강조시키고 있으나
문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성으로서의 인물성을 생각하자면 실망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햄릿의 내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에 애통해하거나 하진 않았다.
차라리 전부 다 죽어버리는 것이 통쾌하고 그나마 덜 찝찝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오만한 햄릿이 살아남는 것도, 교활한 왕이 살아남는 것도 그 누구도 응원하지 못했기 때문에..
읽을 때는 짧게 짧게 스쳐갔던 생각들인데 막상 쓰다보니 길어져서 약간 당황스럽다.
전혀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
다음 오셀로와 리어왕, 맥베스도 이렇게 쓰려면 못 쓰겠는 걸 싶어서
좀 짧게 간단히 쓰는 걸 생각해봐야겠다.
그러다가도 쓰고 싶으면 뭐든 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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